<사무원>, 김기택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혀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손익관리대장경과 자금수지심경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1. 김기택 시인의 비판력
김기택 시인은 1957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89년 <<한국일보>>에 <가뭄>이 당선되어 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특히 당시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겪어야 했던 비인간성과 물질/정신적 폭력을 비판했습니다. 표면적으로 경제발달이라는, 하루하루 발전하는 대한민국이었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비인간적인 면만 강요되기도 했죠. 대중들 역시 하루하루 가족들을 먹여 살렸어야 했기에, 그러한 사회 현실에서 많은 저항을 하지 못하고, 순응적으로 살아갔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시집이 1999년에 출간된 <<사무원>>이라는 시집입니다. 대표작으로 <다리 저는 사람>, <사무원> 등이 수록되어 있는 이 시집에서 우리는 <사무원>에 대해 감상해 보겠습니다.
2. 사무원의 일상적인 풍경, 하지만 비인간적인 모습
이 시는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여 밤 늦게까지 일하는, 당시 한 사무원의 모습을 그려낸 시입니다. 시인은 사무원을 철저히 관찰하여, 그 묘사를 아주 꼼꼼하게 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감정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중간중간의 사무원을 종교적 행위의 수행자로 묘사한 풍자와 사무원을 비인간적인 물질로 묘사하는 부분들을 통하여 '비극적 현실과 인간의 사물화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죠.
사무원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이른 아침인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의자 고행을 합니다.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업무를 하는 모습을 불교적 고행에 빗대어, 풍자하고 있습니다. 불교적 고행은 '진리'를 얻기 위한 수행이죠. 의자에서 앉아 일하는 것이 마치 '업무라는 진리'를 좇는 모습인 마냥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비인간적인 사회가 만들어낸 강제적 모습입니다.
사무원은 자기 책상의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습니다. 하여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한 번 앉으면 일어날 수 없는 것은 자기 의지도 있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도 한몫 했을 것입니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해결해야 할 때조차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의자에 앉아 '보리밥과 김치'로 공양을 할 뿐입니다. 여기서 또 다시 '공양'을 통하여 불교적인 비유를 합니다.
보리밥과 김치는 아주 특별하게 맛이 있는 음식이라기보다는 생명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음식에 가깝습니다. 이를 통해 사무원의 식사 역시도,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3. 그의 다리는 의자와 같다
이러한 사무원은 결국 의자라는 물질과 같습니다. 항상 앉아 있기에, 발이 땅에 붙어서 딱딱한 의자처럼 된 것이죠. 이를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사무원은, 생명력을 잃어버린 그런 존재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역시 불교적 행위로 묘사하여 회사 업무에만 몰두하는 비인간적인 사무원의 모습, 나아가 그 사회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손익관리대장경과 자금수지심경이라는 불교적 느낌으로 포장한 업무들. 진리를 담은 경전처럼 느껴지는 그 업무들은 무비판적으로 사무원의 손에 잡혀 있습니다. 결국 이 마지막 행까지 철저한 묘사와 불교적 색채를 통해 '비인간적이고 사물화된 삶을 사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죠.
♣ 개인적인 의견
지금은 노동자들이 회사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복지 체계가 이전보다도 좋아져 업무에 있어서 많은 부분이 자유로워진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처사와 비인격적인 대우는 끊임없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죠. 급격한 경제발전 속에서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을 하지 않았던 것이 일에 있어 당연한 것으로 변화하여, 지금까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아모아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해인, <7월의 시> (시 수집 91) (0) | 2023.07.09 |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시 수집 90) (0) | 2023.07.05 |
이육사, <절정> (시수집 88) (0) | 2023.07.02 |
이해인, <여름 일기5> (시 수집 87) (0) | 2023.06.29 |
심보선, <아버지, 옛집을 생각하며> (시 수집 86) (0) | 2023.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