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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하늘>, 박두진 (시 수집 93)

by 알쓸수집가 202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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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1. 청록파 시인, 박두진

박두진 시인은 1916년 경기 안성에서 태어났습니다.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에 <향현>, <묘지송> 등을 발표하며 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박목월, 조지훈 시인과 함께 <<청록집>>(1946)을 발간한 '청록파' '시인이죠. 

 

그의 시는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저항에 굴하지 않는 모습, 화합의 모습을 자연을 통해서 표현해 냈습니다. 특히 그의 시는 남성적인 기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박목월, 조지훈 시인과는 다른 모습의 그의 시에는 강인한 정신이 깃들어져 있습니다.

 

오늘은 그의 시 중 <하늘>이라는 시를 감상해 보겠습니다. 이 역시, 하늘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끝없이 갈망하는 자세에서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는, 박두진 시인의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죠.

 

 

2. 하늘이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고개만 들면 어디서든 보이는 그런 자연물입니다. 그런데 왜 시인은 하늘이 저 멀리서 오고 있다라는 표현을 했을까요? 그것은 하늘이 항상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하늘을 볼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유가 간신히 생겨서야 하늘을 바라봤기에, '이제야 푸르른 하늘이 오고 있구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던 것이죠. 이 시에서의 하늘은 이상적인 세계일수도 있고 화자가 동경하는 어떤 대상이나 이념일 수도 있습니다.

 

이 하늘을 시인은 '호수처럼 푸르다'고 합니다. 푸르름이 가득한 하늘은 곧 긍정적인 이미지를 담은 대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하늘에 화자는 온몸을 풍덩, 안깁니다. 온몸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하늘의 푸르른 기운. 즉 이상적인 세계를 갈망하는 화자의 강한 열망이 직관적으로 표출되는 부분이죠. 이러한 강렬함이 박두진 시인의 시라고 볼 수 있는 점입니다.

 

 

3. 온몸으로 하늘의 호흡을 받아들이다

강렬한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화자는 가슴으로 하늘을 받아들이고 하늘의 호흡을 하나하나 느낍니다. '가슴으로'라는 말의 반복을 통해서 시인이 갈망하는 하늘에 대한 동경과 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푸르른 자연의 이미지가 우리 가슴에도 그대로 들어와, 읽는 우리 역시 상쾌함으로 가득해집니다. 

 

6연에서는 다시 하늘을 마신다고 합니다. 하늘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하늘이 가슴에까지 스며들었지만, 화자는 아직 목마릅니다. 화자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아직 채우지 못했기에, 하늘 안에 있으면서도 하늘을 끝없이 갈망하는 것이죠. 목마름이라는 갈증의 표현은 즉 화자가 바라는 이상이 아직 진정으로 도래하지 않았다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이 하늘 속에서 자신이 익고 있다고 합니다. 하늘 안에서 자신 역시 하늘의 일부가 되어, 마음 = 하늘과 동일시됩니다.

 

이 시는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가오는 하늘을 향해 직접 뛰어들고, 하늘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궁극적으로 융합까지 하는 그러한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적 표현은 '시인이 그만큼 이상적인 세계를 갈망했음을, 나아가 우리 민족 모두가 이러한 이상향을 갈망하고 끝없이 염원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들입니다.

당시 박두진 시인이 시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는 민족 전체에 어두움이 드리던 시기였죠. 일제강점기, 해방 후 혼란, 6.25까지. 이러한 시련의 시기에 가장 바랐던 것은 우리 민족의 앞에 펼쳐진 푸르른 하늘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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