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노루>, 박목월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 가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1. 청록파 박목월 시인의 시 한수
박목월 시인은 자연을 소재로 하여 자연에 대한 섬세하고 폭넓은 감각적 묘사, 그리고 향토적 정감이 깃든 노래말과 같은 어조 바탕의 시를 써온 시인입니다. 박두진, 조지훈 시인과 함께 낸 <<청록집>>은 이러한 그의 시적인 경향을 잘 보여주는 시집이기도 하죠.
그의 시 중에는 짧지만 자연의 섬세한 모습과 향토적인 정서가 넘쳐 흐르는 시들이 많습니다. <나그네>, <윤사월>을 비롯하여 이 <청노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박목월 시인이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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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나그네> (시 수집 46)
,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1. 자연을 소재로 향토적인 정감을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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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선이 사는 듯한, 신비로운 자연의 세계
이 시는 4음보의 시로, 신비롭고 이상적인 자연 세계를 시각적인 감각으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시입니다. 박목월 시인의 시 특징 중 하나는 시선이 점차 가까이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1, 2연에서는 전체적인 자연의 모습이 그려진다면 3연 이후부터는 시각이 좁혀서 그 안에서 자유롭게 열두 굽이를 돌아다니는 청노루로 시상이 좁혀집니다.
신선이 사는 듯한, 신비로운 자하산 속의 절 청운사. 푸른 구름이라는 뜻의 청운사는 뜻을 봐도 '신선이 있을 법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구름을 타고 다니는 신선이 잠시 쉬었다 가는 절과 같은 느낌이죠. 자하산의 '하'는 '놀 하'입니다. 곧대로 해석하면 '자주빛으로 노는 산'이라는 뜻이죠. 자주빛 산, 푸른 빛도 아니고 붉은 빛도 아닌 자주빛이라는 이미지가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이러한 자연의 모습을 보면 한 폭의 동양화가 생각납니다. 구름에 가려져 속세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신비로운 산 속 공간, 그 안에서 뛰어다니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청노루'입니다.
3. 청노루의 눈에 깃든 구름
3연은 시간적인 배경입니다. 느릅나무의 속잎이 열두 굽이 피는 계절, 청노루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납니다. 청노루는 이상적인 공간에서 뛰어노는 존재로, 초탈한 신선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청노루의 맑은 눈에는 다름 아닌 구름이 가득히 있죠. 시인은 특히 마지막 4, 5연에서 아주 느릿한 호흡과 정서적인 여백을 주어, 이상적인 공간의 평온함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4. 시인이 바랐던 이상향은 파괴되지 않은 자연과 평화인가
이 시는 박목월 시인의 초기시 중 하나입니다. 당시에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혼란, 이후의 6.25 등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기였죠. 민족은 고통받았으며 아름다운 땅 한반도의 자연은 외세 민족의 수탈과 민족 간의 분열로 인해 파괴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박목월 시인은 평화가 깃든 깊은 산 속 이상향의 세계를 그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개인적인 의견
신선이 되면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늦으면 늦는 대로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참으로 부러운 삶입니다. 1분 1초를 급하게 살아가고 있는 요즘,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잠시라도 느리게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가끔은 여유가 필요한 법이겠지요.
*박목월 시인의 다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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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윤사월> (시 수집 67)
, 박목월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1.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초기 시 박목월 시인은 '청록파' 시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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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산도화> (시 수집 79)
, 박목월 산은 구강산 보랏빛 석산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1. 자연시의 대가, 청록파 박목월 자연을 소재로 한 시를 쓴 시인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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