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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유자효, <속도> (시 수집 95)

by 알쓸수집가 202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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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유자효

 

속도를 늦추었다

세상이 넓어졌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세상이 더 넓어졌다

아예 서 버렸다

세상이 환해졌다

 

 


 

 

1. 유자효 시인에 대해

유자효 시인 하면 잘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자효 시인은 대한민국 문학 단체 중 가장 오래된 단체인 한국시인협회의 44대 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꾸준하게 시 활동을 하며 대중들에게 자신의 시로 위로를 줘 온 경륜 있는 시인입니다. 

 

1947넌,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불어과를 졸업한 뒤 기자로 활동합니다. 그러던 도중,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소묘 3제>>가 입선을 하는 등, 이때부터 본격적인 시 창작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의 시 <가을의 노래>는 노래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죠.

 

유자효 시인의 시는 쉽고 간결합니다. 또한 단순합니다. 위 시를 보세요. 딱 6줄로 이루어진, 아주 짧은 시입니다. 소재 역시 일상적인 소재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가슴 속에 직진해 오는 시들이 많습니다. 시의 내용은 속도를 늦추는 내용이지만, 시가 우리의 마음 속으로 달려오는 속도는 아주 빨라 눈치 채지 못할 정도입니다.

 

 

 

2. 느림의 미학

우리는 빠르게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원해서라기보다는,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죠. 조금이라도 빠르게 일어나서 빠르게 할 일을 하고, 빠르게 학교나 직장에 출근하고 빠르게 일합니다. 몇 초라도 아끼기 위해서 과속을 하고 칼치기를 하고, 횡단보도가 빨간불인데도 발은 걸음을 떼고 있고, 그렇죠. 이러한 우리에게 시인은 속도를 늦출 것을 이 시를 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반복입니다. 1,3,5행과 2,4,6행이 같은 구조로 반복되면서 속도가 느려짐에 따라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변화를 효과적으로 말해 줍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변화입니다.

 

 

3. 느려질수록 세상은 환해진다

빠른 속도로 달리느라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우리에게 시인은 속도를 늦추라고 말합니다. 속도를 늦추면 세상이 넓어집니다. 빠르게 지나갔던 순간순간의 장면들이 천천히 보임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보는 시선이 넓어지는 것이죠.

 

이렇게 느림의 미학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속도를 잠시 멈추면, 내 눈에 들어오는 세상은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건 멈췄기 때문에 세상이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계속 빛나고 있었지만 바쁘고 빠르게 달렸던 우리이기에 그러한 세상의 빛을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죠.

 

간혹 길을 가다가 잠시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이 이렇게 맑고 쾌청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죠. 하늘은 항상 아름답고 쾌청하여 내 마음을 정화시켜 줄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땅만 보며 빠르게 걷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이 그런 줄 몰랐던 거죠.

 

이처럼 유자효 시인은 이 <속도>를 통해 삶에서 가끔이라도 꼭 필요한 느림의 자세를 누릴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를 읽고 있다면, 한 번쯤 멈춰있는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의 마음도 고요해지고, 잠시 찾아온 평화는 하루를 버틸 원동력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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