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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최승호, <아마존 수족관> (시 수집 96)

by 알쓸수집가 202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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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수족관>, 최승호

 

아마존 수족관 집의 열대어들이

유리 벽에 끼어 헤엄치는 여름밤

세검정 길

장어구이집 창문에서 연기가 나고

아스팔트에서 고무 탄내가 난다

열난 기계들이 길을 끓이면서

질주하는 여름밤

상품들은 덩굴져 자라나며 색색이 종이꽃을 피우고 있고

철근은 밀림, 간판은 열대지만

아마존강은 여기서 아득히 멀어

열대어들은 수족관 속에서 목마르다

변기 같은 귓바퀴에 소음 부엉거리는

여름밤

열대어들에게 시(詩)를 선물하니

 

노란 달이 아마존 강물 속에 향기롭게 출렁이고

아마존 강변에 후리지아 꽃들이 만발했다

 


 

 

 

1. 비극적 현실을 인식하고 시로 해결하고자 한 최승호 시인

최승호 시인은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습니다. 1977년에 <<현대시학>>에 시 <비발디>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시집 <<대설주의보>>(1983)를 시작으로 <<세속도시의 즐거움>>(1990), <<그로테스크>>(1999), <<모래인간>>(2000) 등의 많은 시집을 내며 활동했죠.

 

그의 시는 시집 <<그로테스크>>나 <<세속도시의 즐거움>>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비극적인 현실에 대한 고발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러한 현실 등의 배경에서 깨달은 삶의 본질에 대한 시들이 주를 이룹니다. 제목부터가 찌뿌림을 주는 <<그로테스크>>, 이러한 제목을 통해서 최승호 시인은 현실에서 얼굴과 마음을 찌뿌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비극과 이러한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깨닫게 해 주고자 했죠.

 

이 시 <열대어 수족관>은 <<세속도시의 즐거움>>에 수록된 시입니다. 세속도시, 말그대로 세속주의에 찌든 그러한 도시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커다란 수족관, 그리고 그 안의 물고기. 이것에서 시인은 물고기와 동일한 우리 인간의 비극적인 삶을 보았습니다.

 

 

2. 수족관 열대어들이 바라는 것은 아마존 강

이 시는 2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연수족관 열대어들의 갇혀 있는 삶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여기서의 열대어들은 우리 인간이 투영된 존재로, 시인은 열대어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 역시 갇혀 있는 열대어들과 다를 바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열대어들은 유리벽에 끼어 헤엄치고 있다고 합니다. 굳이 '끼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만큼 좁은 공간에서 끼어 있다시피 한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런 열대어들과 인간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음 행부터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삶이 그려지기 때문이죠.

 

세검정 길, 연기 나는 장어구이집, 고무 탄내 나는 아스팔트. 이런 것들은 도시 속 삶의 모습입니다. 기계들이 길을 끓이며, 즉 만들면서 질주하는 여름밤은 시간적 배경이죠. 무더운 여름에 기계들이 길을 더 덥게 만듭니다.

 

 

3. 인간과 열대어의 다를 바 없는 삶

다음 행에서 나오는 '상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바로 근대화의 이면 속에서 하나의 기계부품처럼 갈려 나가기만 한 우리 민중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단순한 상품과 같아져서, 종이꽃을 피웁니다. 종이꽃은 화려할 수는 있지만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도시의 삶 속 우리의 모습은 생명력이 없다는 뜻이죠.

 

이어 9행에서는 철근 = 밀림, 간판 = 열대라는 도시 이미지와 자연 이미지가 대구를 이루면서 이제는 자연보다도 더 자연으로 인식하는 도시의 풍경을 비판합니다. 둘은 대조적인 소재이지만 둘이 같다는 대구적 표현을 통해서 말이죠.

 

이런 공간에서 살아가는 열대어(인간)은 물이 가득한 수족관에 있으면서도 목마릅니다. 정신이 목마르기 때문이죠.

 

 

4. 시상의 변환으로 생명력 가득한 공간을 그리워하다

뒤이어 2연, 갑자기 노란 달이 비치는 아마존 강물로 시상이 변환됩니다. 연의 차이에 따른 시상의 변화는 두 연에서 다루는 내용을 분리시키면서 장면의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만듭니다. 1연의 마지막 행인 '시를 선물함'으로써 시인은 이러한 장면의 변화를 가져왔죠.

 

2연의 아마존 풍경은 생명력이 가득한 진정한 자연의 현장입니다. 이러한 풍경으로 시를 마무리지어, 시는 결국 생명력이 넘치는 우리 인간의 진정한 가치 있는 삶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종이꽃과 대비되는 후리지아 꽃을 통해서 살아있음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개인적인 의견

이러한 시를 읽으면 괜히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이러한 현실을 지금도 저는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현실에서 쉽사리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죠. 과연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저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요. 가슴 한켠이 씁쓸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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