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정호승
나는 왜 아침 출근길에
구두에 질펀하게 오줌을 싸놓은
강아지도 한 마리 용서하지 못하는가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는 순간
새로 갈아 신은 양말에 축축하게
강아지의 오줌이 스며들 때
나는 왜 강아지를 향해
이 개새끼라고 소리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개나 사람이나 풀잎이나
생명의 무게는 다 똑같은 것이라고
산에 개를 데려왔다고 시비를 거는 사내와
멱살잡이까지 했던 내가
왜 강아지를 향해 구두를 내던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데
나는 한 마리 강아지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윤동주 시인은 늘 내게 말씀하시는데
나는 밥만 많이 먹고 강아지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인생의 순례자가 될 수 있을까
강아지는 이미 의자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강아지가 먼저 나를 용서할까봐 두렵다
1. 내로남불, 모순을 반성하다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는 정호승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인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수록된 시입니다.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이라니. 문학작품을 잘 않 읽는 사람들의 눈에는 고상하고 교양 있어 보이기까지 하는 그런 모습을 가진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강아지가 싼 오줌을 보고 화로 가득찬 모습이군요. 웃긴 모습이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합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죠. 동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집에 있는 애완동물의 사소한 실수에도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잖아요. 동물들은 기가 죽어 꼬리를 내리고요.
물론 이러한 모습을 시인이 무조건적으로 풍자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순간 화가 얼마든지 날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연히 그러한 화를 무조건 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일차적으로는 '동물을 대할 때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동물의 입장을 이해하며, 포옹의 자세를 가지자'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동물을 포함하여 우리 사람 서로서로가 진실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용서할 줄 알고 포옹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메시지까지 심었죠. 윤동주 시인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말을 통해서요.
2. 아침 출근길에 오줌을 싼 강아지
아침 출근길만큼 바쁠 때가 없죠. 하필 그럴 때 구두에 오줌을 쌌다니. 참으로 난감할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자는 강아지에게 화를 내고 맙니다. 욕까지 하며 말이죠.
하지만, 잠시 뒤에 다시 생각했을 때 화자는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합니다. 자신의 모순 때문이죠. 산에 개를 데려왔다고 시비를 거는 사내와 싸우기까지 하며 우리 강아지의 소중함을 알렸는데, 정작 그런 강아지가 소변 한 번 못 가렸다고 욕까지 하며 화를 냈으니 말입니다. 꼭 동물에 대한 사례가 아니라고 해도, 이런 일을 우리는 종종 겪습니다. 다른 사람의 티에 대해서 그렇게 뭐라고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그런 모습을 똑같이 할 때가 많죠.
예를 들어, 운전을 할 때 다른 운전자가 깜빡이를 켜지 않으면 뭐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작 그런 사람들도 깜빡이를 켜지 않고 운전을 할 때가 많죠. 다른 사람의 경적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화자는 자신의 행동에서 내로남불, 모순을 느끼고 이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3. 나는 강아지의 마음도 얻지 못하는구나
사람의 마음은 강아지의 마음보다도 더 얻기 힘듭니다. 그런데 강아지의 마음조차 상하게 했으니,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더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겠죠. 이러한 성찰은 17행에서 나타납니다. 이후 화자는 윤동주 시인의 말씀, 자신의 가방에 있는 윤동주 시집을 떠올립니다. 자신이 지성을 쌓고자 들고 다녔던 그 시집에서 화자는 사랑과 용서라는 깨달음을 완벽하게 깨우치지 못했음을 자책합니다.
강아지는 숨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동물은 사람보다도 사랑하는 법을 압니다. 금세 꼬리를 흔들며 다시 나와 화자를 용서하겠죠. 이러한 모습을 생각하며 화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과 성찰을 느낍니다. 그렇게 시는 마무리됩니다.
♣ 개인적인 감상
화를 내도 금세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강아지. 그런 강아지를 어떻게 미워하리라 생각하면서도 또 화를 내곤 하죠. 저도 강아지를 키우기 때문에 곧잘 그러곤 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자세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도록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물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사소한 부분까지도 화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용서라는 감정을 다른 사람, 동물한테는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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