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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윤동주, <참회록> (시 수집 103)

by 알쓸수집가 2023.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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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1. 윤동주 시인의 삶에 대한 고뇌가 엿보이는 작품, <참회록>

젊은 나이에 일제의 무고한 탄압에 의해 타계하신 윤동주 시인. 당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고뇌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고뇌에서 얻은 결론은, 제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있어도 나를 위해, 조국을 위해 나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강인한 의지였죠.

 

이러한 의지를 가슴속에 되새기기 위해, 그리고 한편으로는 가슴 한켠에서 계속 스며나오는 고뇌와 번뇌를 다스리기 위해, 그는 자신의 지난 과오에 대한 글을 쓰며 성찰할 수 있는 글인 '참회록'을 소재로 하여, 시를 한 편 썼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참회록>입니다. 1942년에 발표된 이 시는, 하루하루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며 의지를 다지는, 윤동주 시인의 내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2. 녹이 슨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바로 '거울'입니다. 거울은 원래 목적부터가 비춰진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외관 중에서 이상한 점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기능을 하는 도구죠. 시인은 이 거울을 외형이 아니라 '내면'을 살펴보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을 참회하는 것, <참회록>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셈이죠.

 

첫 행의 거울은 '파린 녹이 낀 구리 거울'입니다. 이는 옛날 유물 중 하나인, 청동거울입니다. 옛날 유물이라는 것, 결국 망한 왕조의 유물인 셈이죠. 이 거울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결국 몰락한 왕조(=당시의 우리나라)와 자신 역시 왕조의 일원으로서 민족성을 잃고 있다는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4행에서 '이다지도 욕될까'라는, 치욕스럽다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죠. 시인은 자신이 망해가고 있는 왕조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망해가고 있는 왕조와 상관없이 지식인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자신에 대한 참회를 시작합니다. 

 

 

3. 만 이십사 년 일 개월, 나는 무슨 의미가 있게 살아왔을까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은 자신이 살아온 삶입니다. 무슨 기쁨을 바라고 살아왔나 싶은 감정을 통해서, 시인은 지난 자신의 삶이 제대로 된 의미와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순간 참회록을 써내려 가며, 시인은 그러한 자신의 과거를 반성합니다.

 

한편 3연에서는 또다른 참회록을 쓸 것을 예고합니다. 이는 자신이 미래에도 항상 참회와 성찰이 있는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더 의미있는 미래를 위해 살아가겠음을 의미하는 표현이기도 하죠. 반성 없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시인은 아마도 '미래에는 이렇게 고뇌하고 반성하는 오늘조차도 참회해야 할 대상이 될 것이다. 그만큼 미래에는 더 굳센 의지를 다질 것이다'라는 마음을 은연 중에 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4. 거울을 닦으면 보이는 나의 모습

4연에서는 다시 '거울'이 등장합니다. 여기서의 거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평범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은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모습'입니다. 운석이란 생명력이 없는 황폐화된 공간입니다. 이 공간은 당시 우리나라와 시인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이 공간 안으로 홀로 걸어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즉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조국과 자신을 위해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겠다는 시인의 다짐을 의미합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을 것이기에 '슬픈 사람'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은 자신의 의지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시인은 당대의 어려운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 안에서 여러 고뇌를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결국 이르게 되는 결론은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는 강한 의지였던 셈이죠. 그 의지를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내일은 오늘보다도 더 의지를 다지겠다'라는 생각을 다잡아야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회록>에 담긴, 윤동주 시인의 곧고 푸른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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