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도종환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1. <접시꽃 당신>으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도종환 시인
도종환 시인의 시는 많은 울림을 주죠. <흔들리며 피는 꽃>은 세상의 장애물에 좌절하는 우리에게 위로와 힘찬 의지를 복돋아줍니다. 한편 사랑하는 아내를 사별하고 이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접시꽃 당신>에서는 아내를 잃은 슬픔과 극복의지가 때로는 덤덤하고 때로는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도종환 시인의 시는 쉬운 언어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합니다.
오늘의 시는 1988년의 시집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에 수록된 <가을비>라는 시입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고, 비가 내리면서 기온은 내려갑니다. 쓸쓸함이 배가 되고, 이별의 슬픔과 상처가 강하게 마음에 몰아치는 가을. 이 가을을 소재로 한 도종환 시인의 사랑시입니다.
*도종환 시인이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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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시 수집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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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접시꽃 당신> (시 수집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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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봄에 사랑을 시작하여 여름에 사랑을 피우더니, 가을이 되니 지기 시작했다
이 시의 배경은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날입니다. 화자는 사랑했던 사람과 바라보며 거닐었던 가을 숲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방과 함께했던 지난날을 회상합니다.
도종환 시인은 앞에서 말했듯 '사별'을 겪었습니다. 사별의 아픔은 어떠한 이별보다도 더더욱 아픈 이별일 것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있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시인은 혼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픔을 시인은 가을이라는 계절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봄은 사랑이 꽃피는 계절이며, 여름은 사랑이 왕성하게 만개하는 계절이죠.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떨어지는 낙엽처럼 사랑은 이별을 종종 맞이합니다. 하물며 갑작스러운 '사별'로 이별한 시인에게 가을비는 쓸쓸함과 고독감을 배가 되게 하는 매개체였을 것입니다.
3. 잎들이 지는 숲을 바라보다
가을 숲길을 바라보는 시인. 그가 바라보는 숲은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이 지는 잎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인 동시에 이별 그 자체, 그리고 상대방을 잃어 힘없이 길을 걷는 화자 자신으로 투영될 수도 있습니다. 모두 힘이 없고, 하강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들이죠.
가을이 지고 겨울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낙엽은 썪어 없어질 것입니다. 3연에서는 겨울이 되는 시간의 변화를 화자가 그립니다. 이는 사별한 아내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시간이 지나 화자의 곁에 있는 것은 아내와의 남은 추억뿐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소멸의 이미지를 시인은 3연에서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 바람만이 불겠지요'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어제는 행복했던 사랑의 순간들, 오늘은 이별로 인한 슬픔의 순간들, 내일은 이별 후 점차 희미해져갈 사랑의 흔적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바람이 부는 가을~겨울을 지나며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 인간 대부분이 사랑을 하며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일들입니다. 이별을 겪으면 추운 겨울이 온 것처럼 외롭고 쓸쓸합니다. 하지만 또다시 봄이 찾아오듯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겠죠. 이러한 자연의 순리처럼 우리 인간도 사랑하고 헤어지면서 한 세상을 계속 살아갈 것입니다.
♣개인적인 감상
이렇게 시인은 계절의 속성을 통하여 사랑의 속성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냈습니다. 사랑은 유한한듯 무한합니다. 사별로 아내를 잃은 시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이 없어져도 사랑했던 정신은 남아 있죠. 사별이 아닌 이별을 겪는 사람들도 사랑을 한때 잃은 셈이지만 다시 또다른 사랑이 싹 틔울 것입니다.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성찰과 새로움을 준비하는 계절이라고도 하죠. 혹여나 연인과 헤어진 분이 이 시를 읽는다면 자연의 순리 중 일부로 가을을 생각하고,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 중 하나로 이별을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도종환 시인의 다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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