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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신경림, <우리 동네 느티나무들> (시 수집 115)

by 알쓸수집가 2023.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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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느티나무들>, 신경림

 

산비알에 돌밭에 저절로 나서

저희들끼리 자라면서

재재발거리고 떠들어쌓고

밀고 당기고 간지럼질도 시키고

시새우고 토라지고 다투고

시든 잎 생기면 서로 떼어주고

아픈 곳은 만져도 주고

끌어안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고

이렇게 저희들끼리 자라서는

늙으면 동무나무 썩은 가질랑

쓸적 잘라주기도 하고

세월에 곪고 터진 상처는

긴 혀로 핥아주기도 하다가

열매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머리와 어깨와 다리에

가지와 줄기에

주렁주렁 달았다가는

별 많은 밤을 골라 그것들을

하나하나 떼어 온 고을에 뿌리는

우리 동네 늙은 느티나무들

 


 

 

 

1. 농민시인 신경림의 자연에 대한 관찰력

'농민시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인 중 한 명인 신경림 시인. 그는 <농무>에서 엿볼 수 있듯 농민의 고달픈 삶, 농촌의 현실 등 농촌과 관련된 시들을 많이 써 왔습니다. 때로는 농촌만이 지니고 있는 푸근함과 향토적 정감을 노래하기도, 때로는 도시화되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소외받은 농촌의 비애를 묘사하면서 다양한 농촌 풍경을 그려왔습니다.

 

느티나무. 물론 도심에서도 볼 수 있지만 군락을 이루어 있는 모습은 도심을 조금은 벗어나야 감상할 수 있는 모습이죠. 시골에 가면 동네의 중심지에는 항상 느티나무와 같은 큰 나무들이 한 그루씩은 심어져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 공동의 휴식의 공간, 일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느티나무. 신경림 시인은 이 느티나무를 통해서 인간 공동체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2. 시의 특징, 느티나무를 의인화

이 시는 쭉 읽어보면 전체가 한 문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간에 종결어미로 문장이 끝나지를 않죠. '~고'라는 연결어미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표현한 것은 '느티나무에 투영된 인간 공동체 생활'입니다.

 

시에서의 느티나무는 인간 공동체 삶의 모습을 투영한 존재입니다. 한 동네, 한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서로 같이 자랍니다. 자라면서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죠. 때로는 장난스럽게 놀다가도 때로는 서로 토라져서 다투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누군가가 아프거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걱정합니다. 힘들 때면 내가 기대기도 하죠.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인간이 왜 사회적 동물인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위와 같은 모습을 시에서는 느티나무에 투영하였습니다. 느티나무는 의인화되어 인간 공동체처럼 다투며, 장난치며, 서로 챙겨 주며, 기대며, 같이 자라납니다. 나이가 들수록 온몸에는 상처가 생기고, 썩은 부분도 자라나지만 이 역시 서로 챙겨줍니다. 우리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죠.

 

 

3. 함께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시의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나무들의 이야기들이 열매처럼 맺혀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히히거리다 다투다 화해하다 서로를 위하는 이 모든 이야기는 그 어떤 것보다도 정겹고 생명력이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멀리 퍼져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탄생시킬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열매로 표현된 것은, 그만큼 공동체 정신을 기반으로 한 우리 사회가 생명력 있으며 더 많은 이들을 껴안을 수 있도록 뻗어나간다는 의미겠지요. 신경림 시인은 이렇게 '느티나무를 통하여 인간 공동체 정신의 아름다운 삶'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시에서 나타난 나무들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를 아끼며 지탱해 주며 살아가야겠지요. 그것이 우리가 함께 일궈 나가는 사회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거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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