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위의 노래를 아시나요? 이 노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입니다. 아이유, 김기태 등이 다시 부르기도 하는 등 꽤나 알려진 노래인데요. 가을에 들어야 하는 노래로 뽑는 분들도 많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o_1_oVeKDc
그런데, 이 노래에는 크다면 큰, 하지만 아주 많이 잘못 쓰고 있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잊혀진'이라는 '잊혀지다'의 활용형입니다. 왜냐구요? 사실 '잊혀지다'는 '잊히다'로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잊혀지다(X)
잊히다(O)
이번에는 이중 피동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1. 피동이란?
영어 동사에는 기본 능동태 외에 수동태가 있듯이 한국어에도 사동과 피동이라는, 기본 동사를 바탕으로 한 응용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중 피동은 '주체가 다른 힘에 의하여 움직이는 동사의 성질'을 의미합니다. 피동의 종류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① 피동 접사(이, 히, 리, 기)를 사용하여 피동이 되는 경우
먹다 → 먹히다 쫓다 → 쫓기다 핥다 → 핥이다 뚫다 → 뚫리다
낚다 → 낚이다 쌓다 → 쌓이다 막다 → 막히다 열다 → 열리다
② '-어지다'를 붙여 피동이 되는 경우
치다 → 쳐지다 보태다 → 보태어지다 만들다 → 만들어지다 늦추다 → 늦춰지다
알리다 →알려지다 태우다 → 태워지다 쓰다 → 써지다
이 두 가지 방식에 의해서 피동 표현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피동 표현을 '이중으로 사용하는 이중 피동'입니다. 즉, ①번과 ②번을 혼합하여 사용하는 것들이죠.
2. 이중피동의 예시
① 잊히다 vs 잊혀지다
이 둘은 올바른 답을 알고 있는 분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중피동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잊혀진 노래>와 같이, 잘못된 표현이 그대로 쓰일 수밖에 없는 거죠. 설령 올바른 표현을 알았다고 해도, 올바른 표현을 썼다가 대중들에게 공감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충분히 있을 수 있잖아요.
원래 기본형은 '잊다'입니다. 여기에 피동 접사 '히'가 붙은 '잊히다'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잊혀지다'에 너무나도 익숙해서,'잊히다'를 사용하면 오히려 어색해하죠.
잊다 + 히 = 잊히다 ♠ 잊혀지다(이중 피동)
예문)
오래전에 잊힌 이야기였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히다.
② 믿기다, 믿어지다 vs 믿겨지다
그 말이 (믿겨지지/믿기지/믿어지지)가 않아
과연 무엇이 맞을까요? 정답은 '믿기지'나 '믿어지지'를 써야 합니다. '믿겨지다' 역시 이중 피동입니다.
믿다 + 기 = 믿기다 ♠ 믿겨지다(이중 피동)
+ 어지다 = 믿어지다
예문)
너의 말이 믿기지가 않아.
엄마는 이 이야기가 믿어져?
③ 열리다 vs 열려지다
문이 저절로 (열렸다/열려졌다)
과연 무엇이 맞을까요? 정답은 '열렸다(열리다)'입니다. '열려지다' 역시 이중 피동입니다.
열다 + 리 = 열리다 ♠ 열려지다(이중 피동)
예문)
비밀의 문이 열리니 금은보화가 가득한 방이 나왔다.
④ 나뉘다 vs 나뉘어지다
세포가 둘로 (나뉘다/나뉘어지다)
과연 무엇이 맞을까요? 이를 헷갈리는 이유는, '나뉘다'가 '나누다'에 피동 접사 '이'가 붙은 형태인 '나누이다'의 준말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나뉘다'로, '나뉘어지다'는 이중 피동입니다.
나누다 + 이 = 나누이다 = 나뉘다 ♠ 나뉘어지다(이중 피동)
예문)
사과가 쪼개져 둘로 나뉘었다.
⑤ 써지다 vs 쓰여지다
글씨가 저절로 (써진다/쓰여진다).
이것 역시 '쓰다'에 '어지다'가 붙은 형태인 '써지다'가 맞습니다. '쓰여지다'는 피동 접사 '이'와 '어지다'가 같이 붙은 이중 피동입니다.
쓰다 + 어지다 = 써지다 ♠ 쓰여지다(이중 피동)
예문)
글씨가 저절로 써지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이렇게 이중 피동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중 피동은 영어의 수동태에 익숙해진 학생들 사이에서 더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는 애초에 이중 피동이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된 표현입니다. 특히 '잊혀지다'는 '잊히다'로 쓰는 걸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정도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지만,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표현을 쓰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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