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 돌아오면>, 신석정
오월이 돌아오면
제발 식물성으로 변질을 하여라
아무리 그늘이 음산하여도
모가지서부터 푸른 싹은 밝은 방향으로 햇볕을 찾으리라
오월이 돌아오면
혈맥은 그대로 푸른 엽맥이 되어라
심장에는 흥건한 엽록소를 지니고
하늘을 우러러 한 그루 푸른 나무로 하고 살자
1. 전원시인 신석정
신석정 시인은 1907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31년, <선물>과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이전에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약 1년 동안 불전을 연구했습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시는 전원적, 목가적인 시들을 초기에 창작했습니다. 그의 시풍이 그러한 경향을 띄게 된 대는 이외에도 노장의 철학, 한용운에게 받은 문학 수업, 도연명의 <<귀거래사>>, <<도화원기>> 등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의 시는 자연성이 깊게 드러나는 전원시로 대표됩니다. 당시 암울한 일제강점기에서 그는 문학인으로서,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난 자연에 주목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시는 잔잔한 전원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읽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순화시키는 호소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오월이 돌아오면> 역시 이러한 시풍이 잘 드러나는 시로, 그 시대 배경까지 알게 되면 단순한 자연 예찬이 아닌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심오한 시입니다.
2. 오월은 푸른 싹의 계절
이 시는 6연 12행으로 이루어진 시로, '오월이 돌아오면'이라는 행이 반복되며 일정한 운율감을 조성합니다. 또한 '~라'라는 어구의 반복 등으로 인해 시의 분위기 역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오월(5월)은 푸르름의 계절입니다. 식물 내음새가 제법 난다고 하는데 3월~4월에 걸쳐서 자라나기 시작한 새싹들이 5월에는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기 때문이죠. 식물 내음새를 그대로 흙에다 내버려도 푸른 싹이 다시 돋을 법하다는 말은 5월이라는 계절이 가진 '생명력', '활기'를 잘 드러냅니다.
3연에 이르러서는 시인은 '제발 식물성으로 변질을 하여라'라고 소망을 나타냅니다. 보통 '변질'은 안 좋은 무엇인가로 변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변질'이라는 단어를 '소망'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함으로써, 강한 소망을 효과적으로 드러냈습니다.
5연과 6연에 이르러서는 '혈맥'이 푸른 엽맥이 된다는 표현을 통해서 우리 자신들이 푸르름을 가졌으면 한다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소망을 드러냅니다. 심장에 엽록소를 지니고 하늘을 우러러보는 푸른 나무가 되자는 소망, 5월의 역동적인 기운을 가지는 주체가 되자는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표현이죠. 이 시는 전체적으로 '5월의 생명력 넘치는 기운을 우리도 받아, 엽록소 가득한 나무처럼 생명력 있고 푸른빛 가득하게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을 소재로 하여 신석정 시인의 시상이 잘 담겨진 시죠.
3. 이 시는 1939년에 지은 시
이 시를 또 다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시가 쓰인 시기가 1939년, 즉 일제강점기의 절정이라는 점인데요. 시에서의 오월은 '희망이 가득한 때, 생명력 왕성한 때'로 그려집니다. 이를 이 시기와 연관지어 생각하면 여기서의 5월은 '광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월이 돌아온다는 건 우리나라가 광복을 하여 희망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며, 푸른 나무가 된다는 것은 폐허가 된 땅을 다시 일구자는 의지로 해석할 수도 있죠.
♣ 개인적인 감상
이 시는 '오월이 돌아오면'을 반복하면서 시인의 희망적인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오월에 밖을 나가면 푸르름 가득한 땅과 나무를 보면서 마음이 정화되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되어 내 몸도 에너지가 가득하게 되는 때가 5월이죠. 암울하기만 했던 이 시기에, 시인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망찬 5월은 언제 올까'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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