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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게로> (시 수집 30)

by 알쓸수집가 202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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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게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십삼 도

영하 이십 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오 도 영상 십삼 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으로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1. 80년대 황지우 시인의 시

황지우 시인의 대표적인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1983년에 발표된 시입니다. 황지우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에 억압받고 좌절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황지우 시인은 이후에도 민중의 시련과 극복 의지에 대한 이미지가 담긴 여러 시를 써 왔습니다. 시적으로는 형식을 파괴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던 황지우 시인은 그러나 그런 시도 속에서도 분명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며, 당시 민중들에게 어떠한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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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시 수집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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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감상하는 시,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게로>는 1985년에 지어진 시입니다.  이 시 역시 시가 발표된 당대를 생각하면 억압된 민중을 위한 시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시련에 굴하지 않는 의지를 표망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한 의지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련에 굴하지 않는 의지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며 미래를 희망하는 우리, 소시민일 것입니다.

 

 

2. 겨울-나무, 봄-나무

이 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제목입니다. 겨울나무와 봄나무가 아니라 겨울-나무, 봄-나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이에 -를 집어넣음으로서, 겨울과 봄은 나무와 분리됩니다. 이로 인해서 겨울과 봄이 더욱 눈에 띕니다. 겨울과 봄은 굉장히 대조되는 시어이죠. 이 대조가 강조되면서 겨울-봄이라는 배경의 변화, 즉 시련과 희망이 교차하는 모습이 더욱 강하게 그려집니다.

 

3. 마침내 마침내 꽃 피는 나무가 되다

1~2행의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라는 것은 나무가 주체적인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나는 나야'라는 말과 같죠. 또한 자기 몸으로 나무라는 것을 드러낸다는 점 역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이 시가 쓰인 배경을 고려하면, 나무민중이며 이 민중들은 자신이 대한민국의 주인인 민중임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거죠.

 

이 나무는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이십 도에 뿌리박습니다. 또한 무방비로 서서 두 손을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섭니다. 이는 전부 나무에 가해지는 시련입니다. 찬바람을 맞고, 무방비 상태에서 벌까지 선다는 것. 군부정권에 의해서 무력적으로 탄압받고, 지은 죄도 없는데 죄가 있다고 벌을 세우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이러한 시련에 나무는 굴하지 않습니다. 9행의 끝, '그러나'를 시작으로 시상은 전환됩니다. 그러나를 가장 끝에 놓음으로서, 다음 행부터는 시상이 본격적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알리고, 시가 2분절 되도록 하는 효과를 갖춥니다. 10행에서 이게 아닌데를 반복하며 현재 상황에 대해 문제인식을 가집니다. 그리고 온몸을 넘어서서 온 혼으로 애태우며, 버티고 또 버팁니다. 

 

마침내 겨울은 물러갑니다. 자연의 순리이죠. 이 역시 시련이 있으면 희망도 찾아온다는 민중의 소망을 대변합니다. 나무의 버팀과 함께 기온은 점점 올라가고 나무는 그럼에도 '온몸으로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집니다'. 봄이 찾아올수록 고통은 더 찾아오지만, 끝내 봄을 맞이하겠다는 의지로 그려집니다. 시인은 으스러지다, 터지다 등의 강한 시어를 사용함으로서 나무의 굳센 의지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는 22~23행에 이르러 마침내, 끝끝내 꽃을 피운다는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마침내, 끝끝내 역시 비슷한 시어를 반복 사용하여 애타는 마음을 증폭시킵니다. 그리고 꽃을 피운다는 것은 희망이 피어났음을 의미하죠. 

 

이 시가 써진 1985년은 군부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황지우 시인은 이런 민중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느끼고, 그들을 지지하기 위해 시에 이런 메시지를 담았을 것입니다. 이로부터 2년 뒤에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 민주화를 맞이했으니, 당시 민중들의 강한 의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개인적인 의견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당시 생활상을 들어보면 참으로 억압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무얼 생각하면서 보내왔냐고 물으면, 모두 악착같이 버텨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라고 말하시더군요. 크고 작은 시련을 이겨내며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지금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지금 시대의 사람들 모두 지위와 상관없이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황지우 시인의 시에는 민중들의 저항의식이 담겨 있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도 시련 끝에 희망이 찾아온다는 굳센 메시지는 마음을 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희망을 상징하는 시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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