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문틈 사이로 거실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찌개를 한 숟갈 먹어보고 있었다. 방의 불을 켜보니 켜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안경을 찾아보았는데 없어서 엄마를 불러보았다. 엄마는 힐끗 돌아보더니 얼른 일어나라고만 했다. 아직 자는 줄 아나보다.
-수집가의 일기-
여러분은 지금 '보다'의 잔치를 보고 계십니다. 이 말을 하니 또 '보다'가 나왔군요. 자, 그런데 밑줄에는 틀린 말이 하나 있습니다. 과연 무엇일까요? 네? 하나밖에 없을 리가 없다고요? 하나도 없는 거 같다고요? 분명히 하나만 있습니다. 자,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요?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정답은...!
위 문제를 보고 당황스러워 했던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본용언과 보조용언의 띄어쓰기, 그리고 이와 유사하지만 붙여서 써야 하거나 띄어서 써야 하는 단어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보조용언이란?
한국어에서 서술어의 기능을 하는 용언에는 동사와 형용사가 있습니다. '먹다, 자다, 씻다' 등 동작을 나타내는 품사가 동사이고 '예쁘다, 쓰다, 차갑다' 등 상태를 나타내는 품사가 형용사죠. 그런데 이들 용언은 기본형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본용언+보조용언'의 구성으로 쓰일 때도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서의 보조용언이란, '본용언 뒤에 연결되어 본용언의 뜻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는 용언'을 의미합니다.
가지다 + 싶다(희망) → 가지고 싶다.
하다 + 보다(시도) → 해 보다.
꺼지다 + 가다(진행) → 꺼져 가다.
와 같은 구성에서, '싶다, 보다, 가다'는 그 뜻을 그대로 가진 본용언이 아니라 어떤 특정 뜻을 보충해주는 보조용언입니다. 보조용언의 예시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싶다(하고 싶다), 보다(해 보다), 가다(꺼져 가다), 버리다(깨트려 버리다), 내다(막아 내다), 주다(놓아 주다), 척하다(아는 척하다), 법하다(볼 법하다)
그렇다면 이 보조용언은 앞의 본용언과 붙을 때 어떻게 띄어서 써야 할까요? 정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같은 '본용언'+보조용언' 구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띄어서 써야 하는 것도 무조건 붙여서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에 따라 띄어쓰기가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이를 하나씩 알아보겠습니다.
2. 띄어서 쓰되 붙여서 쓰는 것이 허용되는 경우
일단 대부분의 '본용언+보조용언'은 띄어서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한글 맞춤법에서는 붙여서 써도 되는 경우를 명시해 놓고 있습니다.
① 본용언+ 아/어 + 보조용언인 경우
본용언 뒤에 아/어가 오고, 보조용언이 오는 경우에는 본용언과 보조용언을 붙여서 쓸 수 있습니다.
먹다 + 어 → 먹어 + 보다 → 먹어 보다(원칙), 먹어보다(허용)
자다 + 아 → 자 + 보다 → 자 보다(원칙), 자보다(허용)
지다 + 어 → 져 + 주다 → 져 주다(원칙), 져주다(허용)
깨뜨리다 + 어 → 깨뜨려 + 버리다 → 깨뜨려 버리다(원칙), 깨뜨려버리다(허용)
하다 + 아 → 하여 → 해 + 보다 → 해 보다(원칙), 해보다(허용) *bold : 보조용언
위 예시에서 제일 앞의 본용언들에는 모두 아/어가 붙죠. 이 경우, 뒤에 오는 보조용언과는 띄어서 쓰는 것이 원칙이나 붙여서 쓰는 것이 허용됩니다.
② 관형사형 + 보조용언(의존명사 + 하다/싶다) 구성인 경우
무슨 말인가 싶죠? 이는 예시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척하다', '체하다', '듯하다', '성싶다', '만하다' 등과 관련되어 있죠. 앞말에 관형사형이 오고, 보조용언으로 위의 말이 오는 경우에는 붙여서 사용이 가능합니다.
아는(관형사형) + 체하다 → 아는 체하다(원칙), 아는체하다(허용)
될(관형사형) + 법하다 → 될 법하다(원칙), 될법하다(허용)
올(관형사형) + 성싶다 → 올 성싶다(원칙), 올성싶다(허용) *bold : 보조용언
2. 띄어서 써야 하는 경우
그럼 본용언과 보조용언을 띄어서 써야 할 때는 언제일까요? 1번을 제외하면 띄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쉽죠.
① 아/어가 아닌 종결 어미들이 붙을 경우
아/어가 아닌, 종결 어미가 본용언 뒤에 결합하고 그 뒤에 보조용언이 올 때는 본용언과 보조용언을 띄어서 써야 합니다.
먹나 보다(O) 먹나보다(X)
힘들지 싶다(O) 힘들지싶다(X)
하나 보다(O) 하나보다(X)
자나 보다(O) 자나보다(X)
② 본용언 뒤에 조사가 붙거나 본용언이 합성 용언인 경우
본용언 뒤에 바로 보조용언이 오지 않고, 사이에 조사가 오는 경우에도 띄어서 씁니다. 또한 본용언이 합성 용언인 경우에도 띄어서 쓴다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먹어도 보다(조사 '도'가 붙음)
읽어는 보다(조사 '는'이 붙음)
집어넣어 두다(집어넣다가 합성 용언)
파고들어 본다(파고들다가 합성 용언)
떠내려가 버리다(떠내려가다가 합성 용언)
③ 의존명사 뒤에 조사가 붙은 경우
위에서 관형사형 뒤에 '의존명사 + 하다' 구성인 경우에는 붙여서 쓸 수 있다고 했죠? 하지만 의존명사 뒤에 조사가 붙은 경우에는 붙여서 사용할 수 없고, 관형사형 / 의존명사+조사 / 하다 를 띄어서 써야 합니다.
'읽은체하다'의 '체' 뒤에 조사가 붙으면 → 읽은 체를 하다(O) 읽은체를하다(X)
'올듯하다'의 '듯' 뒤에 조사가 붙으면 → 올 듯도 하다(O) 올듯도하다(X)
3. 붙여서 써야 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붙여서 써야 하는 경우입니다. 띄어서 써야 할 때도 있지만, 무조건 붙여서 써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본용언과 보조용언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문법 중 하나죠.
① 한 단어로 굳어진 경우
'보다', '주다'와 같은 보조 용언의 경우, 대개 붙여서 쓸 수 있다고 해도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랬죠.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의 단어로 굳어진 것은, 즉 표준국어대사전에 등록이 된 단어는 '보다', '주다
등이 붙어 있어도 붙여서 써야 합니다.
찾아보다, 알아보다, 바라보다, 살펴보다, 알아주다, 도와주다 등
② 아/어 지다, 아/어 하다가 붙는 경우
아/어 지다는 타동사나 형용사를 자동사로 바꿉니다. 아/어 하다는 형용사를 타동사로 바꾸죠. 이런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붙여서 써야 합니다. 다만 이때도 예외가 있는데, 구에 결합하는 경우에는 띄어서 써야 한답니다.
지우다 → 지워지다
작다 → 작아지다
밉다 → 미워하다
예쁘다 → 예뻐하다
* 먹고 싶다(구) + 어 하다 → 먹고 싶어 하다(O) 먹고 싶어하다(X)
*마음에 들다(구) + 어 하다 → 마음에 들어 하다(O) 마음에 들어하다(X)
이렇게 큰 구분법을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외에도 본용언과 보조용언은 굉장히 다양한 사용법이 존재하는 문법입니다. 한글 맞춤법에서도 보조용언 파트를 따로 다루고 있을 정도지요. 헷갈린다면 국립국어원의 보조용언 규범(한글맞춤범 제 3절 제 47항)을 살펴보면서, 꼼꼼하게 확인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https://kornorms.korean.go.kr/regltn/regltnView.do?regltn_code=0001®ltn_no=182#a198
한국어 어문 규범
kornorms.korean.go.kr
자, 마지막으로 제일 위의 문제를 맞춰 보겠습니다. 문제를 보면 '보다'가 들어간 말로는
바라보다 먹어보다 켜보다 찾아보다 둘러보다 돌아보다 아나보다가 있군요. 어떻게 써야 맞는지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바라보다 :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한 단어(붙여서 써야 한다)
먹어보다 : 먹다 + 어 + 보다 → 먹어 보다(원칙), 먹어보다(허용)
켜보다 : 키다 + 어 + 보다 → 켜 보다(원칙), 켜보다(허용)
찾아보다 :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한 단어(붙여서 써야 한다)
둘러보다 :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한 단어(붙여서 써야 한다)
돌아보다 :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한 단어(붙여서 써야 한다)
아나보다 : 알다 + 나 + 보다 → 아나 보다(띄어서 써야 한다)
자, 딱 하나만 띄어서 써야 하는 것이 존재하네요. 그것은 '아나보다'입니다. '아나 보다'로 띄어서 써야 하죠.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해도 어떤 단어는 붙여서, 어떤 단어는 띄어서 써야 하고 어떤 단어는 둘 다 가능하니 참 헷갈립니다. 하지만 그만큼 정확하게 사용할 줄 안다면 맞춤법 장인의 길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차근차근 복습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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