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현대시73 나희덕,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시 수집 60) ,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1. 나희덕 시인의 따뜻한 포옹이 잘 드러나는 시 나희덕 시인의 시는 '어머니의 모성.. 2023. 6. 4. 강은교, <사랑법> (시 수집 59)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1. 강은교 시인에 대해 강은교 시인은 1945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자라면서 연세대를 졸업한 그녀는 1968년, 신인문학상에 이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70년대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작 활동을 시작한 그.. 2023. 6. 3. 백석, <여승> (시 수집 58) ,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 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1. 동화 같은 쓸쓸함, 백석 시인의 시 저는 백석 시인의 시를 보면 '동화 같은 스토리에 쓸쓸함이 묻어난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백석 시인의 시는 이 이전의 시들과는 달리 아름답고 토속적인 언어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의 서사를 그려내는 듯합니다. 를 읽으면.. 2023. 6. 2. 천양희, <밥> (시 수집 57) , 천양희 워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1. 슬픔의 문턱에서 시로 구원을 받았다 천양희 시인은 1942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난 그녀는 1965년, 박두진의 추천으로 에 , , 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후 인생에서의 큰 시련을 겪습니다. 결혼했지만 이혼을 하고, 5살 난 아이와도 멀어졌죠. 가족의 해체와 이별을 겪은 그녀의 몸은 폐결핵, 결핵, 심장병에 잇달아 걸렸고 그녀는 세상과 손을 끊었습니다. 이 당시인 1969년~1982년까지 그녀는 작품활동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녀를 구원한 것은 시였.. 2023. 5. 30. 정호승, <풍경 달다> (시 수집 56) ,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1. 정호승 시인의 사랑시 정호승 시인의 시는 외로운 존재를 어루만지는, 힘이 되어주는 그런 작품입니다. 오늘의 시 는 사랑을 다룬 짤막한 시로, 이 역시 사랑하는 존재를 어루만지고자 하는 정호승 시인의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시죠. 사랑의 강한 정열이 팍 솓아나오지는 않지만, 담백하고 순수하면서도 사랑이 물씬 묻어나오는, 그런 시입니다. 2. 운주사 와불은 무엇인가? 정호승 시인은 이 시를 운주사 와불을 보고 떠올렸습니다. 운주사 와불은 세계적으로도 그 형상을 찾아보기 힘든, '누워있는 부처님상'입니다. 두 기의 부처님상이 누워있는데 이런.. 2023. 5. 30. 이전 1 2 3 4 5 6 7 ··· 15 다음 반응형